잠 — 두 번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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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서 몸을 봤습니다. 이번엔 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잠에 별문제가 없는 분이라면 이번 편은 건너뛰어도 됩니다. 다만 제 경험상 잠은 건강을 지키는 파트 중 가장 중요한 축입니다. 주변에서 수면 부족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이 봐왔습니다. 앞으로도 잠과 관련된 제 경험과 과학적 사실을 종합해 계속 다룰 예정입니다.

잠은 수리(Repair)입니다

잠을 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휴식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꿈나라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의학계에서는 대체로 잠을 수리(Repair)로 봅니다. 다시 말해 잠을 잔다는 것은 우리 몸의 여러 부분이 고쳐지는 시간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고쳐지는지 먼저 훑어보겠습니다.

  • 근육·뼈 — 성장호르몬이 분비돼 조직을 복구합니다.
  • 피부 — 멜라토닌이 낮 동안 쌓인 활성산소를 정리하고,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이 낮아지면서 콜라겐 분해가 억제됩니다.
  • 면역계 — 감염과 싸우는 신호 물질(사이토카인)이 늘고, T세포·NK세포 같은 면역세포가 더 활발해집니다.
  • 심혈관계 — 혈압이 낮보다 10~20% 떨어집니다. 이 하강 폭이 정상보다 작은 사람은 심혈관 사망 위험이 2.56배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 뇌·마음 — 기억이 정리되고 감정이 가라앉습니다.

다섯 곳 다 잠들어 있는 동안 벌어지는 일이라, 눈을 뜨면 결과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적의 수면시간

일반 성인의 경우 7~8시간을 최적의 수면시간으로 봅니다. 그보다 적거나 많은 경우도 좋지 않습니다.

잠을 몰아 자는 것이 부족한 수면을 채우는 효과는 있지만, 한 번의 장시간 수면이 원래 목적인 수리를 제대로 해주지는 못합니다. 이유는 다음 절에 있습니다 — 수리는 시간이 아니라 단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수면은 몇 개의 단계로 진행됩니다

몸은 밤새 90분 정도의 주기를 4~5차례 반복합니다. 한 주기 안에 얕은 수면, 깊은 수면, 렘(REM)수면이 순서대로 지나갑니다.

얕은 수면(논렘 1~2단계)은 전체 수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합니다. 호흡이 완만해지고 심박수가 내려가며 체온도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깊은 수면으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깊은 수면(논렘 3단계, 서파수면)은 몸을 고치는 시간입니다. 심박수와 호흡수가 하룻밤 중 가장 낮아지고 근육은 완전히 이완됩니다.

이 단계에서 성장호르몬이 파도처럼 분비됩니다. 시상하부의 신경세포 중 분비를 촉진하는 쪽(GHRH)과 억제하는 쪽(SST)이 있는데, 깊은 수면 동안은 촉진 쪽으로 기웁니다. 이렇게 나온 성장호르몬이 뼈와 근육 조직의 성장을 돕고, 지방세포를 분해해 에너지로 쓰이게 하고, 면역세포 기능도 끌어올립니다.

앞서 본 다섯 곳 중 근육·뼈가 고쳐지는 장면이 바로 이것입니다. 첫 문단에서 말한 “수리”의 실체가 이 단계에 있다고 보는 쪽이 맞을 것입니다.

렘수면은 마음을 고치는 시간입니다. 뇌 활동은 깨어 있을 때만큼 활발해지고 꿈을 꾸는데, 꿈속 행동이 실제로 몸을 움직이지 않도록 근육은 일시적으로 마비됩니다. 이 단계에서 기억이 정리되고 감정이 가라앉습니다.

한 가지 더 알아둘 게 있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깊은 수면과 렘수면, 이 둘의 비중이 바뀝니다. 잠든 직후 몇 주기는 깊은 수면 비중이 높고, 새벽에 가까워질수록 렘수면 비중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총 수면시간이 짧으면 깊은 수면과 렘수면 둘 다가 아니라, 뒤쪽에 몰려 있는 렘수면부터 잘려 나갑니다. 몰아 자기가 수리를 온전히 대신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수면의 질은 시간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시간을 다 채워도 다음 세 가지가 어긋나면 수리가 덜 됩니다.

규칙성. 매일 같은 시각에 자고 일어나는 것이 중요한데, 특히 기상 시각을 고정하는 쪽이 취침 시각을 맞추는 것보다 더 효과가 큽니다. 호주 플린더스대 수면건강연구소(한나 스콧 박사팀) 연구에 따르면, 총 수면시간이 불규칙하면 고혈압 위험이 최대 9~15% 높아지고, 잠드는 시각이 하루하루 31분만 달라져도 고혈압 위험이 최대 29%까지 올라갑니다. 잠의 양보다 일관성이 깨지는 쪽이 심혈관계에 더 타격을 줍니다.

체온. 잠들 때는 몸의 중심 체온이 자연히 내려가야 합니다. 침실을 18도 안팎으로 서늘하게, 어둡고 조용하게 유지하면 이 하강을 돕습니다. 너무 덥거나 추우면 잠이 자주 끊기고 렘수면이 줄어듭니다.

호흡. 자는 동안 숨이 고르지 않으면 — 코골이가 심하거나 숨이 잠깐씩 멎었다 이어지는 수면무호흡증이 있으면 — 시간을 다 채워도 깊은 수면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얕은 수면 언저리에서 계속 깨어납니다. 지난 비만 편에서 다룬 병 중 하나가 이 수면무호흡증이었습니다. 내장지방이 기도 주변에 쌓여 기도를 좁히기 때문인데, 잠과 비만이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로 맞물려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수면은 좋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대개 40대·50대일 겁니다. 그 나이대만 놓고 보면 그림이 좋지 않습니다. 통계청 「2024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40대는 하루 평균 7시간 52분, 50대는 7시간 40분을 잡니다. 둘 다 5년 전보다 줄었습니다.

시간을 채워도 다가 아닙니다. 같은 조사에서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고 답한 비율이 40대 8.2%, 50대 11.1%, 60세 이상은 19.6% — 다섯 명 중 한 명꼴입니다. 게다가 앞서 봤듯이 시간이 7시간을 넘겨도 규칙성·체온·호흡 중 하나만 어긋나면 수리는 덜 됩니다. 숫자만 채웠다고 안심할 일이 아닙니다.

좋은 수면을 위한 방법

사실 우리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1. 규칙적인 수면시간을 정합니다. 특히 깨어나는 시간을 일정하게 고정하는 쪽이 잠드는 시간을 맞추는 것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앞서 본 대로, 기상 시각이 들쭉날쭉하면 총 수면시간이 비슷해도 몸에는 다르게 남습니다.

  2. 오후 2시 이후엔 커피 같은 각성 물질을 절제합니다. 카페인의 반감기는 보통 5~6시간입니다. 오후 2시에 마신 커피도 밤 8시까지 절반 가까이 몸에 남아 있는 셈이라, 늦게 마실수록 잠드는 데 방해가 됩니다.

  3. 저녁을 일찍 먹습니다. 늦은 저녁이나 회식은 가능하면 피하거나 최소한만 먹습니다.

  4. 잠들기 2시간 전(밤 8시 이후)에는 화면(TV·컴퓨터·스마트폰)을 멀리합니다. 꼭 봐야 할 일이 있다면 레드 렌즈 안경을 씁니다. 블루라이트를 막아 멜라토닌(수면 호르몬) 분비가 덜 억제되도록 돕는 방법입니다. 화면을 완전히 끊기 어려운 늦은 시간에, 안경 하나로 심신을 조금 더 차분하게 가라앉혀 수면으로 넘어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레드 렌즈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

넷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귀찮고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보다 며칠간 숙면을 취한 아침의 기분 좋은 느낌은,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을 넘어 세상을 대하는 자세마저 바꿀 만큼 강력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생활습관을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드는 순간을 기다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얘기한 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이 되는 베이스입니다. 이 루틴부터 만들고 나면 그다음부터 훨씬 강력한 처방이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이런 루틴이 없는 상태에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걸, 저도 수십 년간 불면증을 겪으며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봤지만 불면증 자체를 고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수면의 과학을 알고 나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야, 지금은 원하는 질의 수면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 편들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우선은 위 네 가지로 기본 베이스 루틴을 잡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Takeaway

  • 잠은 휴식이 아니라 수리(Repair)입니다. 최적 수면시간은 7~8시간이고, 몰아 자기는 이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 밤새 90분 주기로 얕은 수면·깊은 수면·렘수면이 반복됩니다. 깊은 수면은 몸을, 렘수면은 마음(기억·정서)을 고칩니다.
  • 수면의 질은 시간뿐 아니라 규칙성(특히 기상 시각), 체온(침실 18도 안팎), 호흡(코골이·수면무호흡)으로 정해집니다.
  • 40대는 평균 7시간 52분, 50대는 7시간 40분을 잡니다. 5년 전보다 줄었고, “잠들기 어려웠다”는 응답도 40대 8.2%·50대 11.1%·60세 이상 19.6%로 나이 들수록 늘어납니다. 시간을 채워도 질이 나쁘면 수리는 덜 됩니다.
  • 오늘 시작할 것: 기상 시각 고정하기, 오후 2시 이후 카페인 끊기, 저녁 일찍 먹기, 취침 2시간 전 화면 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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