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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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밥, 빵, 면, 떡)에서 “채소를 먼저 먹으라”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채소 자체는 깊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그 채소를 뜯어보겠습니다.

채소, 왜 이렇게 강조할까

세계보건기구(WHO)는 10세 이상이면 하루 최소 400g의 채소·과일을 먹으라고 권합니다(2~5세는 250g, 6~9세는 350g). 흔히 말하는 “하루 5접시” 권장량도 이 400g을 80g씩 5번으로 나눈 것입니다. 같은 자료에서 WHO는 식이섬유 하루 25g 이상, 나트륨 2g(소금 5g) 미만, 첨가당 전체 열량의 10% 미만도 함께 권합니다.

채소가 주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 식이섬유 — 수용성 식이섬유는 위·장에서 젤 형태로 변해 소화 속도를 늦추고 포만감을 줍니다. 불용성 식이섬유는 물에 녹지 않은 채 그대로 장을 통과하며 배변과 장 건강을 돕습니다.
  • 비타민·미네랄 — 비타민C, 엽산, 비타민K, 비타민A 전구체(카로티노이드), 칼륨, 마그네슘 등입니다. 자세한 성격은 바로 아래에서 다룹니다.
  • 파이토뉴트리언트(phytonutrient) — 채소 색소에 들어 있는 생리활성물질입니다.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는 다음 항목에서 다룹니다.

채소가 대체로 저GI인 이유도 결국 식이섬유입니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은 “식이섬유나 지방이 많을수록 GI가 낮아진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에 수분 함량이 높고 칼로리 밀도가 낮다는 점이 더해져, 같은 양을 먹어도 혈당에 미치는 영향이 작습니다.

파이토뉴트리언트란 무엇인가

채소 얘기를 하면 꼭 나오는 단어인데, 정작 무엇인지는 잘 안 짚고 넘어갑니다.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은 “식물(phyto)”과 “화학물질(chemical)”을 합친 말로, 식물이 자외선·해충·병균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고 만들어내는 화학물질 전체를 가리키는 넓은 개념입니다. 파이토뉴트리언트(phytonutrient)는 그중에서도 사람이 먹었을 때 건강에 이롭다고 알려진 것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두 용어는 실제로는 거의 같은 뜻으로 섞어 씁니다. 리코펜·베타카로틴·안토시아닌· 글루코시놀레이트 같은 것들이 여기 속합니다.

비타민·미네랄과 다른 점이 중요합니다. 비타민·미네랄은 부족하면 괴혈병·구루병처럼 이름 붙은 결핍증이 생기고, 그래서 국가가 정한 하루 권장섭취량(RDA)이 있습니다. 파이토뉴트리언트는 다릅니다. 결핍증도 없고 RDA도 없어서 “필수영양소”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지금까지 수천 종이 발견됐고, 채소·과일을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심혈관질환이나 일부 암의 위험이 낮다는 역학 연구 결과가 꾸준히 이 물질들과 연결돼 왔기 때문입니다.

색깔별 파이토뉴트리언트와 미국인의 색깔별 채소·과일 섭취 부족 비율을 정리한 인포그래픽

색깔별 파이토뉴트리언트와 미국인의 색깔별 섭취 부족 비율

다만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파이토뉴트리언트는 “음식으로” 먹을 때와 “알약으로” 먹을 때 결과가 다를 수 있습니다. 1994년과 1996년에 각각 발표된 대규모 임상시험(ATBC, CARET)에서는 흡연자·석면 노출자에게 베타카로틴을 고용량 보충제로 줬더니, 예상과 반대로 폐암 발생률이 오히려 높아졌습니다. 채소를 많이 먹는 사람이 건강한 것과, 그 안의 특정 성분 하나만 뽑아 고용량으로 먹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그래서 파이토뉴트리언트는 보충제가 아니라 채소·과일 자체로 챙기는 게 원칙입니다.

색깔마다 다른 역할

식약동원 편에서 “무지개색 재료 중심”으로 먹으라고 추천했는데, 색깔마다 실제로 다른 파이토케미컬이 들어 있습니다.

색깔 대표 채소 주요 성분 알려진 역할
빨강 토마토 리코펜, 안토시아닌 항염 지표 개선, 심혈관 지원
주황·노랑 당근, 단호박 베타카로틴 항산화, 비타민A 전구체
초록 브로콜리, 잎채소 클로로필, 루테인, 엽산, 글루코시놀레이트(설포라판) 심혈관 지원
보라·파랑 자색양배추, 가지 안토시아닌, 플라보노이드 항산화
흰색·갈색 마늘, 양파, 버섯 퀘르세틴 등 플라보노이드, 알리신 항균·심혈관 지원

한 가지 색만 먹으면 한 가지 파이토케미컬만 챙기게 됩니다. 목표는 매 끼니 최소 세 가지 색, 가능하면 그보다 더 다양하게입니다. 오늘 식탁에 없는 색부터 채우는 게 가장 쉬운 시작점입니다.

전분질 채소는 다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합니다. 채소라고 다 같은 채소가 아닙니다. 감자·고구마·옥수수·완두콩·단호박처럼 전분질 채소는 잎채소· 브로콜리·오이·양배추·버섯 같은 비전분질 채소보다 탄수화물이 훨씬 많습니다. 익힌 기준으로 반 컵당 감자는 탄수화물 약 13g, 브로콜리는 약 6g으로 2~3배 차이가 납니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건강한 접시(Healthy Eating Plate)” 모델은 아예 감자·감자튀김을 채소 칸에서 빼버립니다. 혈당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때문이라고 명시합니다.

감자는 조리법에 따라 GI가 크게 갈리는 대표적인 식품이기도 합니다. 삶으면 품종에 따라 GI 87~101, 구우면(러셋 감자 기준) GI 약 111로 오히려 더 높아지고, 으깬 감자는 80~98입니다. 지난 편에서 다룬 “식힘 효과”가 감자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갓 삶은 홍감자는 GI 약 89, 식히면 약 56까지 떨어집니다. 반대로 감자튀김은 기름에 튀기는 과정에서 소화 가능한 전분 비율이 줄어(88.8% vs 삶은 감자 98.5%) GI가 38~76으로 오히려 삶은 감자보다 낮게 나오기도 합니다 — 물론 그렇다고 튀김이 더 건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난 편에서 다룬 고구마도 삶으면 GI 약 44지만 구우면 훨씬 높아진다고 했는데, 같은 원리입니다.

참고로 당근은 GI가 높다는 오해가 오래 있었는데, 1981년 발표된 연구(피험자 5명, 방법론 문제 있음)의 수치가 잘못 퍼진 것으로, 이후 제대로 재측정한 결과 GI는 41(저혈당지수)입니다. 냉동 완두콩도 GI 42로 낮은 편입니다.

수용성 비타민과 지용성 비타민, 무엇이 다를까

앞서 나온 비타민들을 조리법과 연결해 보기 전에, 먼저 이 둘의 차이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핵심은 하나입니다 — 수용성 비타민은 매일 챙겨 먹어야 하고, 지용성 비타민은 얼마나 먹는지 신경 써야 합니다.

수용성 비타민
비타민C · B1~B12
물에 녹습니다 → 몸에 저장되지 않고
소변으로 빠져나갑니다
(B12만 예외 — 간에 수년치 저장)

그래서 매일 꾸준히 먹어야 합니다.
많이 먹어도 대부분 그냥 배출됩니다.

지용성 비타민
비타민 A · D · E · K
기름에 녹습니다 → 간과 지방조직에
쌓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 씁니다

그래서 매일 안 먹어도 버팁니다.
대신 지나치게 많이 쌓이면 문제가
될 수 있어 양을 신경 써야 합니다.

수용성 비타민(비타민C, B1·B2·B3·B5·B6·B7·B9(엽산)·B12)은 물에 녹는 성질이라 몸이 저장해두지 않습니다. 딱 하나 예외가 B12인데, 간에 수년 치를 저장해두기 때문에 결핍이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나머지는 오늘 많이 먹어도 내일이면 대부분 소변으로 빠져나가므로, 매일 조금씩 꾸준히 채워 넣는 게 중요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과다 섭취를 걱정할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용성 비타민(A·D·E·K)은 기름에 녹는 성질이라 간과 지방조직에 쌓아둘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 이틀 덜 먹어도 몸에 남아 있는 양으로 버팁니다. 문제는 반대 방향입니다 — 계속 많이 쌓이면 독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정확히 짚을 게 있습니다. 실제 독성 사례는 대부분 고용량 보충제나 동물 간처럼 농축된 형태에서 나옵니다. 채소에 든 베타카로틴(비타민A 전구체)은 몸이 필요한 만큼만 비타민A로 바꾸도록 스스로 조절하기 때문에, 당근·단호박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중독되지 않습니다 — 최악의 경우 피부가 살짝 노랗게 되는 카로티노데르마 정도인데, 이마저 무해하고 되돌릴 수 있습니다. 비타민E·K는 아예 음식으로 섭취해 중독됐다는 보고 자체가 사실상 없습니다. 그러니 “채소를 많이 먹어서 지용성 비타민이 쌓일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채소를 조리할 때 흡수를 높이려고 일부러 기름을 더하는 만큼, 그 기름의 종류와 양 정도는 습관으로 관리해두는 게 합리적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아래 실천에서 다루겠습니다.

무엇이 채소의 영양을 바꾸는가

같은 채소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남는 영양소가 달라집니다. 네 가지로 정리됩니다.

  1. 수용성 비타민은 물에 씻겨 나갑니다. 비타민C와 B군(엽산 포함)은 물에 녹기 때문에, 물에 오래 삶을수록 손실이 큽니다. 브로콜리· 시금치·상추를 5분씩 조리한 실험에서 손실률은 찜(약 9~14%), 전자레인지(약 21~28%), 끓는 물에 삶기(약 40~55%) 순으로 늘었습니다. 여러 채소를 비교한 다른 연구에서도 찜·전자레인지가 가장 안전하고, 삶기·튀기기가 손실이 크고 편차도 컸습니다.
  2. 지용성 비타민은 기름과 함께 조리하면 오히려 더 잘 흡수됩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베타카로틴·리코펜 같은 카로티노이드와 비타민E·K는 기름에 녹는 성질이라, 생으로 먹을 때보다 약간의 기름과 함께 익혀 먹을 때 흡수율이 오릅니다. 올리브오일과 함께 조리한 토마토를 먹은 실험에서는 혈중 리코펜 농도가 82% 증가했지만, 기름 없이 조리한 토마토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습니다. 당근도 생으로 먹기보다 기름과 함께 익혀 먹을 때 베타카로틴 흡수가 늘어난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정확한 수치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3. 브로콜리의 설포라판은 살짝 찌는 게 핵심입니다. 설포라판은 브로콜리에 원래부터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미로시나아제라는 효소가 글루코시놀레이트와 반응해야 만들어집니다. 연구에 따르면 5분 이하로 찌면 이 효소가 가장 잘 보존되는 반면, 끓는 물에 삶거나 전자레인지에 1분만 돌려도 효소 대부분이 파괴됩니다. 실제 측정치로는 브로콜리류를 끓는 물에 삶으면 글루코시놀레이트가 85% 넘게 사라지는 반면, 찌거나 살짝 볶으면 절반 정도는 남습니다. 이미 푹 익힌 브로콜리라도 생겨자·무·루꼴라처럼 효소가 살아 있는 재료를 곁들이면 설포라판 생성 반응을 일부 되살릴 수 있습니다.
  4. 전체적으로 보면 찜 ≥ 전자레인지 > 볶음 > 삶기 순입니다. 콜리플라워·당근·고구마를 비교한 연구에서는 찜과 전자레인지가 비타민C·폴리페놀·항산화력을 가장 잘 지켰고, 삶기가 가장 손실이 컸습니다. 튀김은 직접 비교한 신뢰할 만한 연구를 찾지 못했지만, 고온·장시간 기름 노출을 감안하면 손실이 가장 클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바꿨습니다

원리를 알고 나니 실천도 방향이 잡혔습니다.

  • 매 끼니 최소 세 가지 색의 채소를 올립니다. 무지개색 원칙을 실제 식탁에 옮기는 방법인데, 가능하면 세 가지에 머물지 않고 최대한 다양한 색을 그날그날 채워 넣으려 합니다.
  • 조리법은 생채소(샐러드)와 찜·구이 위주로 합니다. 오래 삶아야 하는 국·찌개보다는 날것으로 먹거나 살짝만 익히는 쪽을 우선합니다.
  • 오일은 딱 두 가지만 씁니다. 센불에서 볶거나 구울 때는 발연점이 높은 아보카도 오일을, 그 외 나머지 조리·무침·드레싱에는 올리브오일을 씁니다. 다른 식용유는 집에 아예 두지 않거나, 향을 위해 아주 적은 양만 씁니다. 위에서 짚었듯 채소만으로 지용성 비타민이 위험 수준까지 쌓이는 일은 거의 없지만, 조리에 쓰는 기름의 종류와 양을 단순화해두면 관리가 쉽습니다.
  • 브로콜리·양배추 같은 십자화과는 주 3회 이상, 살짝만 찝니다. 푹 삶지 않습니다.
  • 감자·옥수수 같은 전분질 채소는 밥처럼 다룹니다. 무한정 먹는 “채소”가 아니라 탄수화물 양의 일부로 계산합니다.
  • 채소부터 먹는 순서는 그대로 유지합니다. 지난 편에서 다룬 대로입니다.

채소를 늘리니 달라진 것

지난 편에서 CGM으로 채소 먼저 먹기의 효과를 그래프로 확인했다고 했는데, 채소의 양과 다양성을 늘린 뒤로는 그 효과가 더 뚜렷해졌습니다. 같은 밥 양을 먹어도 식후 최고 혈당이 예전보다 낮게 나오는 걸 반복해서 확인했습니다. 식이섬유 섭취가 늘면서 포만감이 오래가고 배변도 편해졌다는 것도 체감한 변화입니다. (이 부분은 필자 개인의 경험이며, 정량적으로 측정한 결과는 아닙니다.)

실천

  1. 하루 400g, 색깔은 최소 세 가지 이상. WHO 권장량을 기준으로, 매 끼니 색이 겹치지 않게, 가능하면 더 다양하게 채소를 올리세요.
  2. 생채소·찜·구이 위주로, 오일은 두 가지만. 국·찌개처럼 오래 삶는 조리보다는 샐러드나 살짝 찌는 쪽을 우선하고, 센불에는 아보카도 오일, 그 외에는 올리브오일만 씁니다.
  3. 십자화과는 살짝만 찌세요. 5분 이내가 기준입니다.
  4. 감자·고구마·옥수수는 채소가 아니라 탄수화물로 계산하세요. 지난 편의 저GI 원칙이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Takeaway

  • WHO는 하루 최소 400g의 채소·과일을 권합니다. 식이섬유·비타민· 미네랄·파이토뉴트리언트가 채소가 주는 핵심 세 가지입니다.
  • 파이토뉴트리언트는 결핍증도 RDA도 없는 비필수 성분이지만, 수천 종이 만성질환 위험 감소와 연결돼 왔습니다. 다만 고용량 보충제로 만들면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는 게 임상시험(ATBC, CARET)으로 확인된 만큼, 음식으로 챙기는 게 원칙입니다.
  • 수용성 비타민(C, B군)은 저장되지 않아 매일 먹어야 하고, 지용성 비타민(A·D·E·K)은 간·지방조직에 저장됩니다. 다만 채소만으로 지용성 비타민이 위험 수준까지 쌓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실제 독성은 대부분 고용량 보충제에서 비롯됩니다.
  • 색깔마다 다른 파이토케미컬이 들어 있어, 한 가지 색보다는 최소 세 가지, 가능한 한 다양한 색으로 먹는 게 낫습니다.
  • 감자·고구마·옥수수 같은 전분질 채소는 GI가 높고 조리법에 따라 크게 달라져, 채소보다는 탄수화물에 가깝게 다뤄야 합니다.
  • 수용성 비타민은 삶을수록 손실이 크고, 지용성 비타민은 기름과 함께 조리할 때 흡수가 늘고, 브로콜리의 설포라판은 살짝 찔 때 가장 잘 보존됩니다. 전체적으로는 찜·전자레인지가 가장 안전한 조리법입니다.
  • 채소의 양과 다양성을 늘리면 채소 먼저 먹기의 혈당 개선 효과가 더 뚜렷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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