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편에서 당뇨와 고혈압을 봤습니다. 두 병 모두 밥과 깊이 얽혀 있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으니, 이제 그 밥을 제대로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오늘부터는 밥을 주제로 한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식약동원 — 음식과 약은 뿌리가 같다
약식동원(藥食同源), 또는 순서를 바꿔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약과 음식은 그 뿌리가 같다”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한의학 전통에서 오래 쓰였습니다. 동의보감에는 “식약동원(食藥同原)”이라는 표기가 나오고, 세종대에 편찬된 의서 「식료찬요(食療纂要)」는 음식으로 병을 다스리는 ’식치(食治)’를 조선의 공식 의학 체계 안에 담았습니다. 도라지·더덕·산딸기처럼 한약재이면서 동시에 흔히 먹는 식재료인 “식약공용” 품목이 실제로 많은 것도 이 전통을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건, 비슷한 생각이 서양 현대 영양학에서도 독자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입니다. “음식이 곧 약이 되게 하라”는 말은 흔히 히포크라테스가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의 저작에 없는 오인용으로 확인됩니다. 대신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심장협회(AHA)· 터프츠대학·하버드보건대학원·미국 국립보건원(NIH) 같은 기관들이 ‘Food is Medicine’이라는 이름으로 이 개념을 임상 현장에 실제로 들여오고 있습니다. AHA는 이를 “식이 관련 만성질환을 예방·관리· 치료하기 위해 건강한 음식을 처방하고, 이를 의료 체계 안에서 통합·지원하는 접근”으로 정의합니다. 처방전 대신 채소 꾸러미를 주는 병원, 식단 상담을 보험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이 여기 속합니다.
동양의 식약동원과 서양의 Food is Medicine은 이론적 배경(음양오행· 기미론 vs. 임상영양학·역학)이 서로 다른 전통에서 나왔습니다. 같은 개념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동서양이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결론 — 음식이 곧 치료와 예방의 도구라는 것 — 에 도달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내 밥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식약동원의 핵심은 음식과 약이 다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다르지 않다는 건, 잘못 쓰면 음식도 약처럼 부작용을 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건 누구나 알지 않나?” 싶은 얘기일 텐데, 왜 많은 분들이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을까요. 이유는 세 가지로 봅니다.
- 정확한 정보의 부재. 약을 대충 알고 복용하면 큰일 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식약동원 방식으로 음식을 다룬다면, 음식도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먹어야 합니다.
- 편식 습관. 대부분 사람에게는 일정한 편식 습관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형성된 습관이라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래서 고치기도 여간 까다롭지 않습니다.
- 보상의 부재. 밥 한 끼가 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는 건 그동안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도 이제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됐습니다.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보상이 바로바로 주어지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는 걸 저도 여러 번 겪으며 알게 됐습니다.
당뇨(전단계 포함) 편에서 본 인슐린 저항성, 고혈압(주의혈압 포함) 편에서 본 혈관 부담은 대부분 오랜 시간 쌓인 밥의 결과입니다. 지금 이 두 상태 중 하나에 해당한다면, 지금 먹고 있는 밥의 구성 자체가 사실상 몸에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같은 쌀밥도 백미로만 먹는지 통곡물을 섞는지에 따라, 같은 국도 나트륨을 얼마나 넣는지에 따라 방향이 갈립니다. 재료는 같아도 구성이 다르면 약도 되고 독도 됩니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럼 어떻게 먹어야 하나”인데, 답을 찾으려면 먼저 어떤 식단들이 있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어떤 식단이 있을까
먼저 식단(Diet)이 뭔지부터 짚고 가면 좋겠습니다. 흔히 다이어트라고 하면 “살을 빼는 방법”부터 떠올립니다. 덴마크 다이어트, 원푸드 다이어트처럼 단기간에 체중을 확 빼서 여름철 수영장에서 멋진 몸매를 뽐내는 모습을 그리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다이어트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언정 건강상 부작용이 크고, 특히 지속가능성 면에서는 빵점에 가깝습니다.
아래 식단들은 의학계에서 근거를 인정받은 것들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각 항목 아래에는 더 깊이 알아볼 수 있는 사이트를 링크해뒀습니다. 대부분 해외 자료라 영어로 돼 있는데, 크롬 같은 브라우저의 번역 기능을 켜면 한국어로 바로 읽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요?
지중해식 식단 — 그리스·이탈리아 남부의 전통 식습관을 기반으로 통곡물·과일·채소·콩류·견과류를 매일, 올리브오일을 주 지방원으로, 생선은 주 2회 이상, 붉은 고기는 최소한으로 먹는 식단입니다. PREDIMED 무작위대조시험에서 심혈관 사건 위험을 유의하게 낮췄고, 다른 코호트 연구에서는 심혈관질환 위험을 25% 낮췄습니다. U.S. News 종합 순위에서 9년 연속 1위를 차지할 만큼 지속가능성과 근거 둘 다 인정받고 있습니다.
더 알아보기: Harvard 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 — Diet Review: Mediterranean Diet
DASH 식단 — 원래 고혈압 관리를 위해 미국 국립보건원이 설계한 식단으로, 과일·채소·저지방 유제품을 충분히 먹고 나트륨과 포화지방을 줄이는 게 핵심입니다. 고혈압 편에서 다룬 대로, 1997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원 연구에서는 이 식단만으로 수축기 혈압이 5.5mmHg, 이미 고혈압이 있던 사람은 11.4mmHg까지 떨어졌습니다. U.S. News 종합 순위에서 지중해식에 이어 2위, 심장건강 부문에서는 1위를 차지할 만큼 근거와 지속가능성 모두 인정받고 있습니다.
더 알아보기: NIH National Heart, Lung, and Blood Institute — DASH Eating Plan
MIND 식단 — 지중해식과 DASH를 결합해 인지기능 저하 지연을 목표로 설계된 식단입니다. 잎채소·베리류·견과류를 강조합니다. 순응도가 가장 높은 그룹은 알츠하이머병 발병률이 53% 낮았다는 코호트 결과가 있지만, 정해진 식단표가 없어 스스로 구성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더 알아보기: Harvard 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 — Diet Review: MIND Diet
저탄수화물/키토제닉 식단 — 탄수화물을 극도로 제한해 케톤체를 에너지원으로 쓰게 만드는 식단입니다. 단기 체중감량과 혈당 조절 효과가 보고되지만, 장기 연구는 부족하고 실천자들이 채소·과일을 소홀히 하는 경향, 초기 부작용(피로·구취·변비)이 흔해 지속가능성 평가가 낮은 편입니다.
더 알아보기: Harvard Health — Ketogenic diet: Is the ultimate low-carb diet good for you?
채식/비건 식단 — 동물성 식품을 배제합니다. 채식인은 심장병 사망 위험이 19~25% 낮고, 당뇨병 위험도 비채식인의 절반 수준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 다만 계획 없이 하면 정제 탄수화물·가공식품 위주의 “무늬만 채식”이 될 위험이 있고, B12·철·아연 보충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더 알아보기: Harvard Health — Becoming a vegetarian
간헐적 단식 — 정해진 시간에만 먹거나 특정 요일에 단식하는 방식입니다. 대사 전환(포도당→케톤체)을 통한 대사 지표 개선이 보고되지만, 인체 대상 장기 연구가 아직 많지 않습니다. 기존 식습관을 크게 바꿔야 해서 전문가는 점진적 도입을 권합니다.
더 알아보기: National Institute on Aging — Research on intermittent fasting shows health benefits
블루존(오키나와) 식단 — 100세 이상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의 식습관으로, 채소·고구마·콩류·두부가 중심이고 “배가 80%만 찰 때까지 먹기(하라하치부)”가 특징입니다. 다만 식단 하나만 떼어 실천하기보다 신체활동·공동체 생활과 묶여 있는 개념이라, 현대 도시 환경에서는 식단만 따로 적용하기 까다로운 면이 있습니다.
플렉시테리언(유연 채식) 식단 — “채식 위주지만 가끔 육류를 허용”하는 식단입니다. 세미채식인은 비채식인 대비 평균 BMI가 낮고 (27.4 대 28.7), 당뇨병 유병률도 크게 낮습니다(0.92% 대 2.1%). 완전 채식보다 진입장벽이 낮아 장기 실천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더 알아보기: Frontiers in Nutrition — Flexitarian Diets and Health: A Review of the Evidence-Based Literature
저GI(혈당지수) 식단 — 혈당을 천천히 올리는 식품(통곡물·고구마· 통과일) 위주로 구성합니다. 당뇨병 관리 측면에서는 비교적 근거가 확립돼 있고, 혈당지수를 일일이 따지기보다 “최소가공식품 위주로 먹기”만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어 실천이 어렵지 않은 편입니다.
더 알아보기: Harvard Health — Healthy diet: Is glycemic index the key?
식단을 고르는 기준
이렇게 많은 식단 중 뭘 골라야 할까요. 저는 세 가지 기준을 봅니다.
1. 목적에 맞아야 합니다. 당뇨(전단계)라면 저GI·지중해식처럼 혈당 관리 근거가 뚜렷한 식단이, 고혈압(주의혈압)이라면 DASH처럼 나트륨·칼륨 조절에 초점을 맞춘 식단이 우선순위가 높습니다. 체중 감량이 목적인지, 만성질환 관리가 목적인지에 따라 답이 달라집니다.
2. 지속 가능해야 합니다. 2014년 「JAMA」에 실린 48개 임상시험, 7,286명 대상 네트워크 메타분석은 이름 붙은 다이어트들 사이의 체중감량 차이가 미미하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저자들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 “환자가 지속(adhere)할 수 있는 다이어트라면 무엇이든 권장할 수 있다.” 2년간 추적한 DIRECT 연구에서도 6개월 시점의 순응도가 장기 성공을 가장 잘 예측했습니다. 결국 어떤 식단이냐보다 얼마나 오래 지키느냐가 관건입니다.
3. 효과가 증명돼야 합니다. 근거 없이 유행하는 식단보다는, 무작위대조시험이나 대규모 코호트 연구로 검증된 식단을 우선해야 합니다. 앞서 소개한 식단 중에서도 지중해식·DASH·플렉시테리언처럼 반복 검증된 것과, 아직 장기 근거가 부족한 것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식단
세 기준을 종합하면 제가 도달한 답은 이렇습니다 — “Rainbow Colored, Plant-Predominant, but Not Excluding Meats, Flexitarian Diet”. 우리말로 옮기면 “무지개색 재료로 채운, 식물 위주지만 육류를 배제하지 않는 유연 채식” 정도가 되겠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식단들은 저마다 장점이 있습니다. 그 장점들만 추려 하나로 합친 것입니다.
이 조합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2024년 「BMC Nutrition」에 실린 비교 연구에서 플렉시테리언(하루 육류 50g 이하)은 완전 채식(비건)이나 일반식보다 대사증후군 점수와 동맥 경직도에서 가장 우수한 결과를 보였습니다. 완전 채식이 전반적으로 유리하긴 했지만, 육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심혈관 위험 지표가 개선된다는 뜻입니다. 「Frontiers in Nutrition」의 리뷰도 체중·대사지표·혈압 개선과 제2형 당뇨병 위험 감소를 뒷받침합니다. 완전 채식만큼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무지개색’을 강조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채소·과일의 색은 그 안에 든 생리활성물질(파이토뉴트리언트)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빨강(라이코펜·안토시아닌)은 심혈관·전립선 건강, 주황·노랑(카로티노이드)은 눈 건강과 면역, 초록(루테인)은 황반변성 예방, 파랑·보라(안토시아닌)는 뇌 염증 감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가지 색만 먹기보다 다양한 색을 골고루 먹어야 여러 경로의 이점을 함께 챙길 수 있습니다.
이런 조합을 제가 처음 제안하는 건 아닙니다. 통합의학자 앤드루 웨일의 항염증 식단 피라미드도 동물성 단백질은 줄이되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 “색 스펙트럼의 모든 부분에서 과일·채소를 고르라”고 권합니다. 영양학자 디애나 미니치의 저서 「The Rainbow Diet」도 비건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색의 식물성 식품을 늘리자는 방향입니다. 제가 추천하는 식단은 이런 선행 개념들과 방향을 같이하되, 앞서 본 세 가지 기준(목적·지속가능성·근거)에 맞춰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실천
- 이번 주 무육류 식사 2회. 완전히 끊는 게 아니라 일부만 빼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 장바구니에 색깔이 다른 채소·과일 3가지 담기. 빨강·초록· 주황 중 오늘 식탁에 없는 색부터 채워봅니다.
- 내 목적부터 정하기. 당뇨(전단계)인지, 고혈압(주의혈압)인지, 아니면 체중 관리가 우선인지에 따라 위에서 소개한 식단 중 출발점이 달라집니다.
구체적인 장보기 목록과 한 끼 구성법은 이 시리즈의 다음 편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Takeaway
- 식약동원(약과 음식의 근원이 같다는 한의학 전통)과 현대의 ’Food is Medicine’은 서로 다른 전통에서 독자적으로 도달한 비슷한 결론입니다.
- 당뇨(전단계)나 고혈압(주의혈압) 상태라면, 지금의 밥 구성 자체가 독으로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 지중해식·MIND·저탄고지·채식/비건·간헐적 단식·블루존·플렉시테리언· 저GI 등 식단은 저마다 강점과 한계가 다릅니다.
- 식단을 고를 때는 목적에 맞는지, 지속 가능한지, 효과가 증명됐는지 세 가지를 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얼마나 지속하느냐”가 성공을 가장 잘 예측합니다.
- 제가 추천하는 식단은 무지개색 재료 중심의, 육류를 배제하지 않는 플렉시테리언 식단입니다. 위 세 기준을 모두 충족하면서 대사·심혈관 지표 개선 근거도 갖추고 있습니다.
출처
- 약식동원(藥食同源), 음식에 사상을 담다 — 국가유산청
- 식료찬요(食療纂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히포크라테스 오인용에 대한 고찰 — Cardenas D., e-SPEN Journal 2013
- Food Is Medicine: A Presidential Advisory From the American Heart Association — Circulation 2023
- About Us — Tufts Food is Medicine Institute
- Food Is Medicine — Office of Disease Prevention and Health Promotion
- Diet Review: Mediterranean Diet — Harvard T.H. Chan Nutrition Source
- DASH Eating Plan — NIH National Heart, Lung, and Blood Institute
- A clinical trial of the effects of dietary patterns on blood pressure (DASH) — N Engl J Med 1997
- Primary Prevention of Cardiovascular Disease with a Mediterranean Diet — NEJM (PREDIMED)
- Diet Review: MIND Diet — Harvard T.H. Chan Nutrition Source
- MIND and Mediterranean diets linked to fewer signs of Alzheimer’s brain pathology — National Institute on Aging
- Ketogenic diet: Is the ultimate low-carb diet good for you? — Harvard Health
- Becoming a vegetarian — Harvard Health
- Research on intermittent fasting shows health benefits — National Institute on Aging
- Blue Zone Dietary Patterns, Telomere Length Maintenance, and Longevity: A Critical Review — Current Research in Nutrition and Food Science Journal
- Flexitarian Diets and Health: A Review of the Evidence-Based Literature — Frontiers in Nutrition 2017
- Plant-based diets and cardiovascular risk factors: a comparison of flexitarians, vegans and omnivores — BMC Nutrition 2024
- Healthy diet: Is glycemic index the key? — Harvard Health
- Comparison of Weight Loss Among Named Diet Programs in Overweight and Obese Adults: A Meta-analysis — JAMA 2014
- Adherence and Success in Long-Term Weight Loss Diets (DIRECT) — Journal of the American College of Nutrition 2009
- Natural pigments of plant origin: Classification, extraction and application in foods — Food Chemistry 2022
- Colorful Foods Mean Cancer Prevention — American Institute for Cancer Research
- Dr. Weil’s Anti-Inflammatory Diet Pyramid — drweil.com
- In U.S. News & World Report’s 2026 Best Diets, DASH Diet Again Recognized as Best Heart-Healthy Diet — Pennington Biomedical Research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