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 밥, 빵, 면,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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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서는 외식과 배달을 줄이고 집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외식은 횟수를 줄였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외식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배달은 끊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당뇨 전단계 판정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손을 댄 건 집밥 쪽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우선— 밥, 빵, 면, 떡. 우리가 가장 자주 먹는 네 가지 탄수화물이었습니다.

밥, 식빵, 라면, 떡 — 우리가 가장 자주 먹는 네 가지 탄수화물

탄수화물, 정제할수록 빨라진다

“밥, 빵, 면, 떡”은 우리 식생활의 중심에 있는 음식들입니다. 고슬고슬한 밥 위에 잘 삭힌 젓갈 한 점 올려 먹거나, 출출할 때 라면 한 그릇이 주는 위안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새로 생긴 베이커리를 찾아가는 즐거움이나, 추석에 송편을 빚어 나눠 먹는 오랜 풍습도 우리 문화입니다. 이 음식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우리의 식문화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이런 음식들이 제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영양이 넘쳐나는 지금은 서구화된 식습관과 결합해 오히려 우리 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음식들의 섭취를 아예 금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더 건강한 명품 식단을 위한 노력을 하자는 것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특히 당뇨와 같은 질환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1편(밥)에서 탄수화물이 몸이 가장 빨리 쓸 수 있는 에너지원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대상(당뇨) 편에서는 이 속도를 수치로 나타낸 혈당지수(GI, Glycemic Index)를 소개했습니다 — 같은 양의 탄수화물을 먹었을 때 혈당이 오르는 정도를 포도당(기준 100) 대비 백분율로 나타낸 값으로, 55 이하면 저혈당지수, 70 이상이면 고혈당지수로 분류합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밥, 빵, 면, 떡은 모두 탄수화물이지만 GI가 같지 않습니다. 게다가 같은 음식이라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조리하는지에 따라 GI가 크게 달라집니다. 이 넷을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밥, 빵, 면, 떡 — 같은 탄수화물, 다른 혈당

수치는 시드니대학교가 관리하는 국제 GI 데이터베이스와 2002년 발표된 국제 GI표(Foster-Powell 외,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같은 품목이라도 품종·조리법에 따라 값이 꽤 갈린다는 점은 감안하고 봐주세요.

— 백미밥은 GI 66, 현미밥은 GI 50입니다. 같은 쌀이라도 겨와 배아를 깎아낼수록(도정) 흡수가 빨라져 GI가 올라갑니다.

— 흰 식빵은 GI 70~71인데, 많은 분들이 더 건강하다고 믿는 통밀빵도 GI 71~74로 흰 빵과 사실상 차이가 없습니다. 시중 통밀빵 대부분이 통밀을 흰 밀가루만큼 곱게 갈아 만들기 때문입니다. GI가 실제로 낮아지는 건 호밀빵처럼 곡물 알갱이가 그대로 씹히는 빵(GI 약 46)뿐입니다. “통밀”이라는 이름만 보고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면과 파스타 — 소면·국수처럼 얇고 곱게 간 밀가루로 만든 면은 국제 GI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측정치가 없습니다(확인된 학술 자료가 없다는 뜻이며, 수치를 임의로 만들지 않고 데이터 공백으로 남겨둡니다). 다만 제조 원리로 보면 흰 빵과 비슷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듀럼밀을 압출 성형해 말린 파스타는 평균 GI 46~58로 꽤 낮고, 통밀 파스타는 32까지 내려갑니다. 같은 밀가루인데도 면과 파스타의 GI가 갈리는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조리 시간도 변수입니다 — 스파게티를 8분 삶으면 GI 44, 15분 삶으면 GI 61이라는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푹 삶을수록 GI가 오릅니다.

— 가래떡·백설기의 GI는 국제 데이터베이스에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직접 측정한 학술 자료가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곱게 빻은 쌀가루를 완전히 쪄서 만드는 제조 원리를 생각하면 GI가 높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실제로 국내 언론이 인용한 영양 전문가들도 “떡에 쓰이는 쌀가루는 입자가 작아 소화·흡수가 빠르다”고 설명합니다. 식혀서 먹으면 영향이 줄어드는데, 이유는 다음 항목에서 설명하겠습니다.

곡물 낟알의 세 가지 구성 요소 — 배유(Endosperm), 겨(Bran), 배아(Germ)
출처: 하버드 의대 교육 과정 강의 자료(필자 직접 촬영)

곡물 한 알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분이 대부분인 배유(Endosperm), 그 배유를 감싸는 껍질층인 겨(Bran), 그리고 싹을 틔우는 부분인 배아(Germ)입니다. 백미·흰 밀가루는 겨와 배아를 깎아내고 배유만 남긴 것이고, 현미·통곡물은 이 세 부분이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도정도”는 결국 겨와 배아를 얼마나 깎아냈는지의 문제입니다.

무엇이 GI를 바꾸는가

같은 탄수화물인데 왜 이렇게 GI가 갈릴까요. 네 가지 원리로 정리됩니다.

  1. 도정도. 겨와 배아를 깎아낼수록 소화효소가 전분에 더 쉽게 닿습니다. 백미가 현미보다 GI가 높은 이유입니다.
  2. 입자 크기. 곱게 갈수록 GI가 오릅니다. 시드니대 GI팀은 “곱게 빻으면 소화효소가 아무 방해 없이 작용한다”고 설명합니다. 통밀빵의 GI가 흰 빵과 비슷한 것도, 식이섬유가 있는 곡물이라도 가루로 갈면 그 이점이 거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3. 호화(糊化). 물과 열을 가해 전분이 익는 과정입니다. 오래, 완전히 익힐수록 전분이 더 풀어져 소화효소가 쉽게 달라붙고 GI가 오릅니다. 파스타를 8분 삶을 때와 15분 삶을 때 GI가 달라지는 게 이 때문입니다.
  4. 노화(老化), 즉 식힘 효과. 익힌 전분이 식으면 일부가 다시 결정 구조로 뭉치면서 소화가 잘 안 되는 “저항전분”으로 바뀝니다. 실제로 1형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갓 지은 밥과 24시간 냉장 후 다시 데운 밥을 비교했더니 저항전분이 100g당 7.52g에서 11.96g으로 늘었고, 식후 최고 혈당 상승폭은 3.9mmol/L에서 2.7mmol/L로, 혈당 곡선 아래 면적은 약 60% 줄었습니다. 식은 밥, 식은 파스타, 식은 감자샐러드가 갓 지은 것보다 혈당에 덜 영향을 준다는 게 여러 연구에서 반복 확인된 원리입니다. 떡을 식혀 먹으라는 조언도 같은 원리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 파스타가 같은 밀가루로 만든 빵보다 GI가 낮은 이유는 제조 방식 때문입니다. 반죽을 발효·구워 부풀리는 빵과 달리, 파스타는 반죽을 압출기로 강하게 눌러 뽑아내고 저온에서 건조합니다. 그 결과 글루텐 단백질이 전분 알갱이를 촘촘히 감싼 구조가 되어 소화효소가 안쪽까지 닿기 어려워집니다. 같은 밀가루라도 “어떻게 뭉쳤는가”가 GI를 바꾸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바꿨습니다

원리를 알고 나니 실천은 단순했습니다.

  • 빵, 면, 떡을 최소로 줄였습니다. 세 가지 모두 곱게 간 가루를 많이 쓰는 음식이라 GI를 낮추기가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 밥의 양도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그리고 그 밥도 흰쌀밥은 최소로 하고, 나머지는 다른 탄수화물로 채웠습니다.

대체 탄수화물로는 이런 것들을 씁니다.

  • 현미(GI 약 50) — 겨와 배아가 남아 있어 백미보다 낮습니다.
  • 보리(GI 약 25~30) — 곡물 중에서도 특히 낮은 편인데, 베타글루칸이라는 수용성 식이섬유가 풍부해서입니다.
  • 귀리·오트밀(GI 약 55~58) — 역시 베타글루칸이 위 배출 속도를 늦춥니다.
  • 고구마(삶으면 GI 약 44, 구우면 훨씬 높아집니다) — 조리법이 중요합니다. 굽는 것보다 삶는 쪽이 혈당에 덜 영향을 줍니다.
  • 렌틸콩(GI 16) — 식이섬유 세 종류(수용성·불용성·저항전분)와 단백질을 모두 갖춰 실제로 존재하는 식품 중 가장 낮은 축에 듭니다.
  • 병아리콩·강낭콩(GI 37~40) — 렌틸콩과 같은 원리입니다.
  • 퀴노아(GI 50~54, 다만 이 수치는 학술 데이터베이스가 아닌 일반 영양 정보 사이트 기준이라 참고 정도로 봐주세요) — 곡물치고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많습니다.

먹는 순서도 바꿨습니다. 반드시 채소를 먼저 먹고, 반찬은 저염으로 바꾸고(고혈압 편에서 다룬 나트륨 얘기가 여기서도 이어집니다), 밥은 그다음에 먹습니다. 이건 감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습관입니다. 2015년 발표된 한 연구는 같은 끼니를 채소·단백질을 먼저 먹고 15분 뒤 탄수화물을 먹는 순서와, 탄수화물을 먼저 먹는 순서로 나눠 비교했는데, 채소·단백질을 먼저 먹었을 때 식후 30분 혈당이 28.6%, 60분 혈당이 36.7% 낮았고 혈당 곡선 아래 면적은 73% 줄었습니다. 전당뇨 대상자로 범위를 넓힌 후속 연구, 일본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도 같은 방향의 결과가 반복 확인됐습니다. 표본 수가 크지 않은 연구들이라 정확한 수치보다는 “먹는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 효과가 있다”는 방향성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밥을 먹은 후에는 반드시 15분 이상 즉시 걷습니다. 5편에서 다룬 그대로입니다. 마지막으로 배달음식은 아예 끊었습니다.

“저는 못할 것 같아요” — 그런데 저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나열하면 대부분 “나는 저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다”고 미리 짐작합니다.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하나,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CGM(연속혈당측정기, 두 번째 대상(당뇨) 편에서 소개했습니다)입니다.

식사를 하고 20~30분 정도 지나면 혈당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실제 CGM 관찰 연구를 보면, 식전 평균 혈당은 92.8mg/dL, 식후 최고 혈당은 평균 143.3mg/dL이고 이 최고점에 도달하는 데 평균 50분(대략 30~70분 범위) 걸립니다. 제 경우 평소(식전) 혈당은 110~120mg/dL을 유지했는데, 밥·빵·면·떡을 많이 먹은 식사 후에는 170~200mg/dL을 넘나들었습니다.

식후에 혈당이 오르는 것 자체는 정상입니다. 문제는 (1) 오른 채로 내려오지 않고 지속되거나, (2) 이런 큰 스파이크가 자주 반복되는 경우입니다. 참고로 미국당뇨병학회(ADA)가 제시하는 식후 180mg/dL 미만이라는 기준은 이미 당뇨병으로 진단받은 환자의 치료 목표치이지, 건강한 사람의 “정상” 기준이 아니라는 점은 짚어야 합니다. 다만 혈당이 자주, 크게 출렁이는 것(혈당 변동성)과 산화 스트레스 사이의 연관성을 보인 연구는 있습니다 — 2형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한 2006년 연구에서는 혈당이 얼마나 심하게 출렁이는지가 산화 스트레스 지표와 강한 상관관계(r=0.86)를 보였습니다. 이 스파이크가 반복되면 인슐린 저항성이 서서히 악화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직 인과관계까지 완전히 정립된 연구 분야는 아니지만, 방향성만큼은 분명합니다 — 스파이크가 잦다는 건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입니다.

별개로, 공복혈당 자체도 이미 진행 방향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공복혈당 110~125mg/dL 구간에서는 매년 약 5~6%가, 100~109mg/dL 구간에서는 매년 약 1% 남짓이 당뇨병으로 진행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스파이크와 별개로, 평소 공복혈당이 어느 구간에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CGM은 이 신호를 실시간으로 보여줍니다. 밥 양을 줄이거나, 채소를 먼저 먹거나, 식후에 걸었을 때 그래프가 눈에 띄게 낮아지는 걸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력과 결과 사이의 간격이 몇 달이 아니라 몇 분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습관을 지키기가 오히려 쉬웠습니다.

두 달 만에 달라진 숫자

이렇게 밥·빵·면·떡을 멀리하고 신선한 채소 위주로 식단을 바꾸면서, 하루 한 끼는 앞서 소개한 지중해식 식단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걷기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2개월쯤 지났을 때 공복혈당은 90mg/dL, 당화혈색소는 5.4%로 떨어졌고, 식사 후에도 140mg/dL을 넘지 않는 수치가 확인됐습니다. 실제로 몸이 가벼워졌고, 식후에 졸리거나 피곤해지는 일도 사라졌을 뿐더러, 탄수화물 섭취가 줄고 나니 쉽게 허기지지도 않았습니다. (당뇨편 게이트 체크에서도 짚었듯, 생활습관 개입으로 인한 개선 폭은 연구마다 편차가 큽니다 — 저의 2개월 결과는 어디까지나 개인 사례이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나타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천

  1. 밥의 양을 줄이고, 흰쌀 비중을 낮추세요. 현미·보리·귀리· 렌틸콩 같은 저GI 탄수화물로 일부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습니다.
  2. 빵·면·떡은 최소로. 곱게 간 가루로 만드는 음식이라 GI를 낮추기 어렵습니다. 굳이 먹는다면 통곡물 조각이 살아 있는 빵, 통밀 파스타를 고르고, 떡은 식혀서 드세요.
  3. 채소 먼저, 저염 반찬, 그다음 밥. 그리고 식사 후 15분 이상 바로 걸으세요.
  4. 가능하면 CGM으로, 아니면 최소 3개월에 한 번 공복혈당·당화혈색소로 확인하세요. 눈에 보이는 숫자가 습관을 지키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Takeaway

  • 밥·빵·면·떡은 모두 탄수화물이지만 GI가 다르고, 같은 음식도 도정도·입자 크기·조리 시간(호화)·식힘 여부(노화)에 따라 GI가 크게 달라집니다.
  • 흰 빵과 통밀빵(가루형)은 GI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 “통밀”이라는 이름만으로 안심할 수 없습니다.
  • 식힌 밥·파스타는 저항전분이 늘어 갓 지은 것보다 혈당에 덜 영향을 줍니다.
  • 채소를 먼저 먹는 순서 하나만 바꿔도 식후 혈당 상승폭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연구가 여러 건 있습니다.
  • CGM 같은 즉각적인 피드백은 습관을 지속하는 데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몸이 하는 말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으니까요.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