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하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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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을 열었습니다. 그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지난 글을 올리고 나서 제가 저에게 물은 게 있습니다. 십 년 동안 검진을 받았다면서요. 그것도 측정 아닌가요. 지금부터 하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답을 못 하면 지난 글은 그냥 반성문입니다.

몸이 하는 말

몸은 계속 말을 걸어옵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언어가 아닙니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잔 날, 아침에 심박수를 재보면 평소보다 높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았던 주에는 공복혈당이 올라와 있습니다. 체중은 그대로인데 허리둘레만 조금씩 줄어드는 날들이 몇 주 이어지면, 근육이 늘고 지방이 줄었다는 뜻입니다. 몸은 이렇게 말합니다. 놓치기 딱 좋은 신호들로 말입니다. 들어도 못 알아들었던 겁니다.

지난 글에서 제가 결과지를 「제가 읽을 수 없는 언어」라고 부른 것도 같은 얘기였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언어를 번역받으려면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1년에 한 번, 그마저도 거르기 일쑤였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손목의 시계 하나, 반지 하나가 매일 매시간 그 신호를 받아 적습니다. 그러고는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숫자로 바꿔서 보여줍니다. 이것이 Quantified Self라는 기술의 가장 간단한 정의입니다. 자기 몸을 수치로 번역한다는 뜻입니다.

제 몸이 하는 말을, 제가 드디어 들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물론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결과지를 한 줄씩 옮겨 적어 ChatGPT에 물었던 그 밤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 저에게 필요했던 것도 번역이었습니다. 지금 하려는 일은 그 번역을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매일, 몸에 붙여서 받는 것뿐입니다.

이번 글부터 몇 편에 걸쳐 하려는 일은 이렇습니다.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질환 넷에 집중합니다. 비만,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당뇨입니다. 넷 다 다른 이름이지만 생활습관으로 충분히 완화할 수 있고, 많은 경우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그다음 다섯 가지를 하나씩 바꿔봅니다. 밥, 잠, 몸, 쉼, 곁입니다.

밥은 언제, 어떻게, 무엇을 먹는지입니다. 잠은 밥만큼, 어쩌면 밥보다 중요한 습관입니다. 몸은 얼마나 움직이는가, 쉼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내려놓는가입니다. 곁은 정서, 그러니까 사람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다섯 다 일상에서 매일 반복되는 행동입니다.

다섯 모두 중요하지만 사람마다 약한 곳이 다릅니다. 베개에 머리만 대도 바로 잠드는 사람이 있고, 몇 년째 불면증인 사람도 있습니다. 본인에게 부족한 한 곳부터 손대면 됩니다.

일상의 습관을 바꾸고 나면 숫자로 확인합니다. 넷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봅니다.

이 과정은 이렇게 흐릅니다.

[대상]  비만·고혈압·이상지질혈증·당뇨
   ↓ 무엇을 바꿀지 정한다
[변화]  밥·잠·몸·쉼·곁
   ↓ 숫자로 확인한다
[확인]  바뀌었나, 안 바뀌었나

앞으로 쓸 글들은 모두 이 틀을 따릅니다. 머리에 이것만 넣어두면, 복잡해 보이는 건강 관리도 단순해집니다.

예전에도 재고 있었는데, 뭐가 다른가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십 년을 측정했는데 관리를 못 한 이유가 무엇인가. 셋이 있습니다.

한 점이냐, 기준선이냐. 건강검진은 1년에 한 점입니다. 한 점만으로는 비교할 것이 없어서 해석이 안 됩니다. 기준선은 다릅니다. 무언가를 바꾸기 직전에 재는 점이고, 그 뒤로 나오는 모든 값은 이 점과 비교됩니다. 비교 상대가 생겨야 측정이 관리로 바뀝니다.

남의 정상 범위냐, 제 정상 범위냐. 결과지에 나오는 참고 범위는 인구 집단 기준입니다. 범위 안에만 있으면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제 기준선에서 계속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그건 신호입니다. 지난 글에서 이미 이 장면을 봤습니다. 「몇 년치를 날짜 순으로 늘어놓으니 같은 항목이 계속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 그때는 왜 이것이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그냥 재느냐, 무엇을 바꿀지 정해두고 재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준선은 숫자가 아닙니다. 다음 행동과 짝지어진 숫자입니다. 짝이 없으면 재고 나서 다시 서랍에 들어갑니다. 십 년 동안 제가 한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기준선은 무엇을 바꿀지 이미 정해둔 상태에서 재는 것입니다.

한 번의 사이클

대상이 정해지면 다음 질문은 이것입니다. 넷을 되돌리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다섯 가지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비만과 고혈압을 보면 둘 다 밥을 바꾸면 따라갑니다. 당뇨와 고혈압은 둘 다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습니다. 한 가지를 손대면 여러 곳이 움직입니다.

한 번의 사이클은 이렇습니다. 하나의 변화를 고르고, 기간을 정하고, 숫자를 봅니다. 바뀌었으면 유지합니다. 안 바뀌었으면 다른 변화를 시도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어느 것이 내 몸을 움직이는지 알아갑니다.

무엇으로, 얼마나 자주 재는지는 다음 글에서 하나씩 짚겠습니다.

오늘 하실 수 있는 것

다 한 번에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은 서랍 한 장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가장 최근 결과지를 꺼내세요. 그리고 넷(비만·고혈압·이상지질혈증·당뇨) 중에 해당하는 항목이 있는지 찾아보세요. 그것이 기준선입니다. 오늘은 동그라미만 치세요. 숫자를 바꾸려고 하지 마시고요.

그럼 이제 몸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러 가 봅시다.